2025. 4. 20. 00:00ㆍLOOP NO.8 (Dairy)
"25년 04월 02일, 인천, 두바이를 건너 카사블랑카까지"

두바이 국제공항을 거쳐 카사블랑카로 향한다. 이곳 두바이는 세계적인 국제 허브공항이니만큼 다양한 곳으로 향하는 환승여행객들이 많다. 나 또한 그 중 일부다. 길었던 비행을 마치고 마주한 두바이공항은 늦은 밤이었고 안을 바삐 둘러보기에는 몸이 다소 지친 상태라 짧게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있어야 할 게이트로 돌아왔다. 얼마전 라마단이 끝나 이드 알 피트르를 마친 무슬림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의 휴가는 마무리되었지만 나의 휴가는 이제 시작되어 서로 교차한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 함께했단 대다수의 승객들이 같이 환승하여 카사블랑카로 향한다. 두바이 공항에서 제일 귀여웠던 것은 공항 내부의 아라빅으로 표기된 롤렉스 로고의 시계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임을 뽐내며 또 동시에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꼭 ’나 이정도는 해’라는 것 같다.

다양한 인종들에 섞여 이 곳에 앉아 있노라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건 그리 중요치 않아진다. 비행기는 제 시간에 정확하게 탑승을 시작했고 나는 나이가 제법 있는 무슬림 부부와 나란히 앉았다. 나는 사실 비행 전에 소변도 대변도 모두 배출하고 비행기에 타는지라 그다지 화장실을 잘 갈 필요는 못 느낀다. 하지만 뭐랄까 나만의 관례로 비행 중에 화장실을 이용하기는 한다. 일종의 기념이라 할 수 있겠다. 근데 이번 비행은 이상하리만큼 배에 가스가 가득차서 내내 불편했다. 공항에서는 괜찮았던 배가 비행기에 타자 급히 더부룩해진 것. 그래서 옆의 무슬림 부부가 앉았을 때는 ’아, 큰일이다’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좌석에 앉아서 편안한 비행을 즐기기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양해를 구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리라 생각됐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남자분은 내게 좌석의 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신 물어본다. 조금은 불편하긴 했지만 어느정도 알려주고 나면 괜찮아 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행 내내 내가 앉은 창가 자리에 몸을 들이밀며 창 밖을 보기도 했고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말을 걸기도 한다. 또 기내식을 먹다가 왕창 흘리고는 털어내는데 나에게도 튀어 날아오기도 한다. 조금 당황스웠다. 하지만 기내식을 먹은 뒤 치우는데 부인께서는 내 기내식 트레이를 받아들어 미리 정리해주시기도 하고, 남자분께서는 어딘가 상공을 지날때면 창박을 가르키며 서툰 영어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저곳은 어딘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어떤 나라고 왜 그런지 하는 것들 말이다. 어찌보면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들이지만 그가 아니라면 지금과 같이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일 아니랴. 조금은 불편한 상황이 있었을지언정 즐거운 시간이었다. 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화는 당연 그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에게 종교가 있냐며 묻더라. 나는 무교인지라, 종교가 없지만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며 대충 둘러대었다. 그러더니 씨익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웃음을 지으며 내게 자신이 말하는 아라빅을 따라해보라고 말한다. 듣자고 보니 아랍어를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나는 무슬림으로 개종한다는 정도의 말인 듯 했다. 어이가 없고 웃긴 상황에 그의 팔을 잡고는 당신 나한테 무슬림이 된다는 말을 하라는거죠? 물었다. 그러자 크게 웃으며 맞다며 알라는 좋은 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무슬림이되면 이곳 모든 무슬림과 친구, 형제가 된다고 말한다. 그의 웃음에서 순수한 의도가 느껴졌다.

비행기가 도착하기에 다다랐을 즈음, 그는 자신이 라바트에 거주한다며 자신과 함께 자신의 집을 방문하지 않겠냐며 선뜻 나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이미 내 여행일정은 큰 틀에서 다 정해진 터라, 이미 결제해둔 호텔과 열차표를 모조리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초대였지만 여태 예약한 표와 예약증명서들을 보여주며 이미 지불한 금액때문에 그에게 쉽지 않겠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나 또한 언제 이렇게 비행기에서 만난 몇시간 짜리 인연에게 그런 초대를 받아보랴. 더구나 아쉬워하는 그의 모습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의 아쉬운 마음 끝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고, 우리는 좋은 만남이었다며 서로 마지막 악수를 건네며 헤어졌다.

이드 알 피트르가 끝난 후의 모로코인들의 귀국길 답게 메카를 들린 이들이 수화물 컨베이어를 기도행렬처럼 길게 따라 섰다. 여전히 그들의 역사와 종교, 전통을 지키는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숭고하고 멋지게 보인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사회 전반에 만연한 혐오와 갈등도 우리 문화의 좋은 정신을 이어받지 못 한 것도 한 몫하지 않나 생각된다.

어쨌든 길고 피곤했던 비행을 마치고는 공항을 나선다. 카사블랑카는 입국 첫날, 그리고 출국 마지막날만 머무르는 것으로 계획했다. 내일 새벽 일찍이 페스로 향해야 하는 탓에 카사블랑카를 둘러보고 또 모로코를 경험해볼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내 숙소는 페스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카사 보야져 역에 바로 맞닿은 이비스 호텔이다. 한국에서 서울에 갈 때면 회사 제휴 숙소로 이용하던 이비스 호텔을 카사블랑카까지 와서 이용하고 있자니 어딘가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다. 24시간 가량을 대륙 위를 횡단하는 동안 씻지 못한 몸을 헹궈내고 한결 산뜻해진 몸으로 길을 나선다.


이리저리 생소한 길을 오가느라 제때 해결하지 못 한 식사를 근처의 식당에서 마쳤다. 나의 첫 타진요리는 치킨 타진이다. 식전빵과 함께 곁들여 먹는 타진은 생소한 맛이라기에는 한국의 찜닭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올리브를 곁들여 주는데 이렇게 먹는게 맞나 싶었지만 그냥 내키는대로 먹었다. 그러면서 옆에 앉아 커피와 담배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던 아저씨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기도 했다. 그렇게 첫 식사를 마치고 우선은 카사블랑카에 있는 아라비카 커피로 향한다. 그 중에 이런저런 좋은 풍경이나 관광지가 있다면 잠깐 길을 멈춰볼 생각이다.
내 숙소 앞에는 프랑스에서 모로코에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트램이 있는데 관광지를 모두 지나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도심으로 오갈만큼의 활용성은 있다. 트램으로 향한 곳에서 관광지까지는 대부분의 장소가 2키로 내외니, 주변을 구경하면서 이동하면 제법 걸어갈만한 거리다. 더욱이 러닝으로 늘상 10키로씩 달리던 터라 그다지 부담스러운 거리가 아니다. 트램은 각 정류장에 매표기가 있는데 편도 8디르함이다. 이때 재밌는건, 동전이 종종 인식이 잘 되지 않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표기에는 동전을 긁을 수 있는 제법 거칠은 질감의 철판이 붙어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 하니, 매표 중에 동전이 반환되면 그 철판에 동전을 마구 긁고는 다시 매표기에 넣자 동전이 잘 인식되는 것이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런게 있나보다. 근데 너도나도 매표기에서 동전을 긁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법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나온 티켓은 어떻게 된 일인지 세로방향으로 내려와 안쪽으로만 밀어 열리는 커버에 같이 밀려 들어가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꺼낸 티켓은 개찰구에 넣는게 아니라 교통카드처럼 찍는 방식인데, 나갈 때 또한 찍고 그대로 들고 나간다. 이런 탓에 나가는 개찰구에는 인식을 하고 남은 티켓이 널브러져 있는데 나는 그냥 주머니에 챙겨갔다. 이게 다 반환이 안 된다면, 8디르함은 트램이용료가 아니라 순수 티켓 발권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탄 트램에서는 홀로 우뚝 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나를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 인도에서처럼은 아니지만 힐끔힐끔 눈이 자꾸 마주친다. 어떤 젊은 여성 무리들은 한국인임을 알아채고는 신기함을 표하다가 트램을 내린 뒤에 나를 향해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트램에 홀로 남은 나는 괜히 머쓱해져 웃다가 금새 표정을 고친다. 아마 한국 드라마나 가수들에게 심취한 이들이겠지.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동양인 남자인 나도 먼 타국 아프리카 땅에서 환대받는 대상이 되기도 하구나 싶더라. 아무튼 그렇게 트램을 내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길을 걸으며 주변 풍경을 보자니 카사블랑카만의 낭만이 느껴진다. 실제로 구글맵으로 걸어서 15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한다. 목에 건 카메라가 분주해진다.

길가에서 오래된 재규어를 정비하는 사람들도,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도,

길을 가는 중에도 통화로 바쁜 현대인의 모습도,

상업도시답게 높고 정갈한 느낌의 건물들도,

바삐 움직이는 이들 사이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고양이들을 지나며,

그렇게 이곳저곳 길의 풍경을 기억해가며 도착한 카페는 모로코다움이 확실히 묻어나는 아라비카 커피였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타일양식을 잘 활용했고 아라비카 커피 로고와 기존의 톤앤매너가 잘 어우러진다. 안팍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고, 아무래도 유명 체인이니만큼 유럽에서 온 이들도 많았다. 유명한 교토 라떼나, 스패니쉬 라떼를 시킬까 했지만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고 또 아라비카 커피의 향이 궁금해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커피 자체는 그냥 보편적인 맛이었던 듯 하다. 그렇지만 에스프레소로 큰 에너지를 얻은 것은 맞다.

여태 한국에서 틈틈히 정리해온 여행일정, 구글링한 장소들을 보며 다음 행선지와 내일의 페스 여행을 미리 살핀다. 그리고 엉덩이가 슬 베겨올 때 즈음에 자리를 뜬다. 해가 저물고 도로는 좀 전 보다 더 붐비는 것 같다. 길을 걷다보면 동양인인 나를 신기해 하는 시선들이 여전히 느껴진다. 그래도 점점 어둑해지는 덕에 눈에 덜 띄는 사람이 되고 있다.


그렇게 이곳저곳 골목을 들어갔다가 큰길로 다시 나오기를 반복해 공원과 광장 몇군데를 들렀다. 정확히 어떤 곳이고는 잘 모르겠지만 현지인들의 이야기가 현재 진행형이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그들이 무엇에 웃고 무엇에 짜증내고 또 어떤이는 무엇 때문에 저리도 골똘히 생각을 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지 관찰해본다.


그리고 어떤 장면은 사진에 남겨본다. 낮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로코의 최대상업도시 답게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붐비지만 내일 이른 새벽부터 열차를 타러갈 생각을 하자니, 발걸음이 자연스레 호텔로 향한다. 타고 온 트램의 반대방향으로 가면 나의 숙소로 갈 수 있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 트램은 모든 역에 정차하지만 내리고 싶다면 안의 문 열림 버튼을 눌러줘야한다. 멍청하게 문이 열리길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눈치를 채고 버튼을 눌러본 덕에 다음 역으로 향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숙소에서 짧았던 카사블랑카의 밤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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